우리 국민과 정부에 드리는 글

우리 국민과 정부에 드리는 글


(일본 교과서 파동에 대한 성명, 2001년8월)

일본정부의 그릇된 자세로 한일관계가 위기에 처해 있는 오늘, 저희 한일문화교류회의에 속하는 한국측 위원들은 우리 국민과 정부와 깊은 우려를 함께 하면서 몇 가지 건의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한일문화교류회의는 1998년 10월에 김대중 대통령이 방일하여 한일 양국정상의 합의로 발표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의 정신에 의하여 1999년 6월에 한일 양국 정부의 추천에 따라 각각 11명 씩, 총 22명으로 구성된 회의입니다. 그간 이른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문제가 일어나기까지 여러 번 회의를 거듭하면서, 한일 간의 문화교류를 활성화하려고 노력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한일 양측이 열의를 가지고 한일 간의 문화교류를 활발하게 하며 나아가서는 동북아시아에 있어서의 문화적 협력을 촉진시키는 데 이바지하려고 했습니다. 더욱이 눈앞에 다가온 한일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축구 월드컵 대회를 향하여 이러한 한일 간의 문화교류를 촉진해갈 뿐만 아니라, 이 대회를 중심으로 한 문화행사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이에 공헌하려고 해 왔습니다. 이리하여 한일 간의 교류가 대회 전후에 크게 발전하고, 대회 후에는 문화교류가 양국 국민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게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일본의「새로운 역사교과서」문제는「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위배될 뿐 아니라, 한일관계를 전면적으로 위기에 빠뜨리게 함으로써 한국과 중국 등 여러 나라의 비판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국민과 정부는 지금까지 의연한 자세로 여기에 대한 대응조처를 취해왔습니다. 따라서 한일문화교류회의도 지금까지의 활동을 거의 중단하다시피 하고 일본 우익 교과서 파동에 의한 불행한 사태를 저지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8월 15일로 이 우익적인, 그야말로 21세기에 있어서 새로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지향하기를 거부하는, 교과서를 일본의 양심적인 국민의 저항으로 일본의 거의 모든 중학교가 채택하기를 거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일본의 민주주의와 시민의 자랑스러운 승리로 특기할 만한 일입니다. 간신히 권력의 작용으로 신체장애자가 배우는 가장 힘없는 양호학교 몇 군데에서 채택하게 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우익 교과서 파동과 그 뒤를 이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참배 등, 이런 것은 일본의 중앙 정치권력과 그 주변의 우익 세력이 위기의식에서 연출해낸 책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일본의 양식 있는 시민활동이 승리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의 단호한 비판과 거기에 상응한 조처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하겠습니다. 일본 국민들 사이에는 국내정치의 위기에서 우익이 대두하고 국제적으로 고립한 나머지 전쟁으로 치달려 패전의 참극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의 역사에 대한 강한 반성이 있었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일본은 문호를 개방하고 세계와 교류했을 때 번영했고, 그 문호를 닫았을 때 패망한 것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제 그런 사태를 다시 자초하려고 하는가, 그 시대와 같은 역사교육을 하려고 하는가, 하고 일본의 양식 있는 시민들은 힘을 다하여 저항했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일본 국민 특히 한일관계를 발전시켜야한다고 애써온 지방자치단체나 수많은 교류의 모임을 추진해 온 시민들은 일본의 중앙정부의 그릇된 정책에 의한 피해자였고, 그러한 책동에 대한 수개월에 걸친 싸움을 끝내고 나서 이제는 그동안에 단절된 한일교류, 상처받은 문화교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하고 한숨짓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은 한국인 우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8.15 광복 기념식 경축사에서 대통령께서도 일본국민에 대하여 「우리 민족에게 끼친 수많은 가해 사실을 잊거나 무시하려는 사람들」과 「어떻게」「미래를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하고 의구심을 표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 이에 반대하고 이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표하면서 싸워온 「양식 있는 많은 일본국민들」에게 기대하면서, 「우리 국민은 일본의 확실한 역사인식의 토대 위에 양국관계가 올바르게 발전되어 나갈 것」을 강하게 소망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한일관계에 대하여 지금 어떠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인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하에 서명한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 일동은 우리 국민과 정부에게 이렇게 호소하고 싶습니다.

1. 일본의 위험한 우경화는 결코 성공하지 못하리라고 봅니다만, 그들의 자국 우월주의, 과거사에 대한 미화, 아시아 경시의 경향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한층 냉철하고도, 현명한 외교적인 접근이 지속적으로 요청된다고 하겠습니다.
2. 그러나 이러한 일본 중앙정부에 대한 자세와는 달리, 한일 양국의 지역 간 또는 국민 간의 교류나 문화 교류는 조속한 시일 내에 더욱 활성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리하여 개방적이고 평화를 사랑하며 상호이해를 추구하는 일본의 시민정신이 강화되고 그야말로 국민을 통한 국민간의 한일교류가 더욱 공고해질 때, 우익적인 정치세력의 반역사적인 책동은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일 간의 국민적, 문화적 교류와 연대는 곧 전면적으로 재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일관계는 이제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정부에 일임하고 경제에만 치우치던 한일관계가 국민교류, 문화교류의 시대로 접어들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이번 소용돌이 속에서도 과거와는 달리 한일 간의 인적교류가 감소하지 않고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여온 데 대하여 적지 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2002년의 월드컵 한일 공동 개최라는 세계적 문화행사를 8개월 앞둔 오늘, 우리는 거듭 한일 간에 있어서 국민간의 교류, 문화교류가 하루속히 활발하게 재개되어야 한다고 호소하는 바입니다. 그것은 우익 역사교과서나 야스쿠니신사참배에 비판적인 한일 양국 국민의 시민적인 교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개월간 한일교류가 침체했던 늪을 어서 벗어나서 이 행사를 더욱 크게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면, 그것은 양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세계를 향하여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기록되리라고 봅니다. 이것은 한일 간의 수많은 불행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한 불행이 있기 때문에 더욱 우리가 수행해 내야 하는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의 민주적인 성숙성에 전폭적으로 신뢰하면서, 여기에 우리는 우리 국민과 정부가 한 차원 높은 새로운 한일관계를 위하여 너그럽게 대국적인 결단을 내려주기를 호소하는 바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시아의 민주적 발전과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